1. 밀물과 썰물이 오가던 강 – 하구둑 이전 영산강의 본래 모습
오늘날 나주를 흐르는 영산강은 잔잔하고 고요한 담수 하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1년 하구둑이 완공되기 전까지 영산강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해 바다와 직접 연결된 영산강은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감조하천(感潮河川)이었습니다. 밀물 때면 짠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나주 일대까지 밀려들었고, 썰물 때면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며 강의 수위와 수질이 하루에도 수차례 변화했습니다. 이 조석 현상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 사람들의 삶 전체를 규율하는 생활의 리듬이었습니다. 어부들은 물때를 보며 그물을 치고 배를 움직였고, 농부들은 강물의 염분 농도를 확인하며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는 시기를 가늠했으며, 상인들은 밀물을 타고 올라오는 배의 뱃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장터를 준비했습니다.
이 시절 영산강은 앞서 8번 글(영산포 홍어)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해의 배들이 나주 영산포까지 거슬러 올라올 수 있는 내륙 수운의 핵심 통로였습니다. 흑산도의 홍어와 서해의 소금, 각종 해산물이 이 물길을 타고 내륙으로 들어왔고, 나주평야의 곡식과 영산강 유역의 물산이 이 길을 통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조석 차이가 있었기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도, 바다로 내려가는 배도 물때만 잘 맞추면 노를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영산강변에는 이 수운을 기반으로 포구와 창고, 장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나주 경제와 문화의 혈관 역할을 했습니다. 강 위에서 살아가는 어부들, 강변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 강물로 논에 물을 대는 농부들에게 영산강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2. 홍수 대책과 농업 용수 확보 – 하구둑이 세워진 이유와 그 이후
1970년대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 속에서 식량 자급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 정부는 영산강 유역의 드넓은 평야를 안정적인 농업 생산 기지로 만들기 위한 대규모 종합 개발 계획을 추진했는데, 그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영산강 하구에 둑을 쌓아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담수를 확보하는 영산강 하구둑 건설이었습니다. 전라남도 무안군과 영암군 사이의 하구를 가로지르는 이 하구둑은 198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하구둑 건설로 바닷물의 유입이 차단되면서 염분 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고, 홍수 때 바닷물과 강물이 동시에 범람하던 문제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하구둑 상류에는 광활한 담수 호수가 형성되어 영산호(榮山湖)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 호수는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에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원이 되었습니다. 하구둑의 정확한 제방 길이와 수문 수 등 구체적인 제원은 자료마다 표기가 다를 수 있으니, 한국농어촌공사나 관련 기관의 공식 자료로 재확인하신 뒤 기재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러나 하구둑 완공 이후 영산강 유역에는 계획하지 않았던 변화들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수운의 소멸이었습니다. 하구둑이 가로막히면서 서해에서 내륙으로 오가던 뱃길이 완전히 끊겼고, 영산포를 비롯한 강변 포구들은 배가 더 이상 닿지 않는 내륙의 강변 마을로 변해갔습니다. 오랜 세월 뱃사람과 상인, 어부들로 북적이던 포구의 활기는 점차 사라졌고,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생업의 방식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강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바닷물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차단되면서 수질 문제도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과거에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자정 작용이 사라지자, 강 안쪽에 유기물이 쌓이고 녹조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 사라진 것들과 새롭게 피어난 것들 – 오늘의 영산강이 던지는 질문
하구둑 건설 이후 영산강 생태계는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汽水)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어종들은 서식지를 잃었고, 강 하구를 산란지와 성장지로 오가던 회유성 어류들의 이동 경로가 차단되었습니다. 반면 담수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새로운 민물 어종이 자리를 잡았고, 영산호 주변에는 철새들이 찾아드는 새로운 생태 공간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구둑은 하나의 생태계를 소멸시키는 동시에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양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변화된 생태계의 구체적인 어종 목록이나 조류 현황은 국립환경과학원이나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공식 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삼으시길 권해 드립니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 덕분에 영산강 유역의 농업 생산성은 높아졌고, 홍수 피해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어부와 뱃사람들은 생업을 잃었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강변 포구 문화는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영산강 주변에는 자전거길과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여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환경 복원 사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구둑이 완공된 지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영산강을 어떻게 관리하고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영산강 하구둑은 개발과 보전, 성장과 상실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하나의 구조물 위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자연과 개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