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5일장, 할매 장터의 풍경
1. 닷새마다 살아나는 도시 – 5일장이 나주에서 이어지는 이유
현대 도시의 소비 구조는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하는 시대에, 닷새에 한 번씩 특정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전통 장터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풍경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주에서는 지금도 닷새마다 어김없이 장이 열리고, 장날이 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활기가 거리를 가득 채웁니다. 이 오래된 장터 문화가 나주에서 유독 끈질기게 이어지는 데는 이 지역이 지닌 역사적·지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나주목은 호남 서남부의 행정 중심지였고, 영산강 수운을 통해 인근 고을의 물산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었고, 나주에는 일찍부터 정기 시장이 발달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 5일장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나주 역시 여러 장터가 닷새 주기로 번갈아 열리는 방식으로 지역 경제의 순환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나주 시내와 인근 지역에는 목사고을시장을 비롯해 여러 전통 시장이 정기 장날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장터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형 유통망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직접 농사를 지은 사람이 직접 들고 나온 채소와 과일, 손으로 만든 음식, 그리고 오랜 시간 이 장터를 지켜온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어떤 온라인 쇼핑몰도 "이거 우리 밭에서 오늘 아침에 뽑아온 거여"라는 한마디를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2. 새벽 네 시부터 시작되는 장터의 하루 – 좌판 위에 펼쳐진 나주의 식탁
나주 5일장의 하루는 대부분의 방문객이 도착하기 훨씬 전인 이른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새벽녘부터 장터 주변 도로에는 경운기와 리어카, 손수레를 끌고 나온 농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밭에서 그날 아침 수확한 채소를 신문지에 싸서 들고 나온 할머니, 지게에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 항아리를 지고 나온 어르신, 새벽 일찍 인근 포구에서 올라온 생선을 큰 대야에 담아 좌판을 펼치는 아주머니까지, 장터는 해가 뜨기도 전에 이미 분주한 준비로 가득합니다. 이들이 펼쳐놓는 좌판은 나주와 인근 지역의 땅과 바다가 그 계절에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담아낸 살아있는 식탁입니다.
봄이면 냉이·달래·쑥처럼 들판에서 직접 캐온 봄나물이 신문지 위에 소복이 쌓이고, 여름이면 오이·호박·가지·고추 같은 여름 채소들이 좌판을 빼곡히 채웁니다. 가을에는 나주배를 비롯한 각종 과일과 햇곡식이 장터의 주인공이 되고, 겨울에는 시래기·무말랭이·고구마처럼 저장해둔 식재료와 함께 따끈한 국밥과 호떡 냄새가 장터 전체를 감쌉니다. 이렇게 계절마다 달라지는 장터의 풍경은 냉동 창고에서 일 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나오는 대형 마트의 진열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간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이 땅이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온 할머니 상인들의 좌판에는 대형 마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재래 품종의 채소나 직접 만든 전통 장류, 손으로 빚은 떡 같은 것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 장터를 찾는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3. 흥정과 이야기, 장터가 품고 있는 사람의 온도
나주 5일장의 진짜 매력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 있습니다. 장터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흥정 소리,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나누는 안부 인사,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아 물건을 고르는 손님과 그 옆에서 덤을 얹어주는 상인의 실랑이가 장터 특유의 활기를 만들어냅니다. 대형 마트에서는 바코드 스캐너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무표정한 거래가 전부지만, 5일장에서는 "이거 얼마예요?"라는 한마디가 종종 그 상인의 밭 이야기, 올해 날씨 이야기, 자식 이야기로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대화로 번지곤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할머니 상인들은 단골손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집 식구 수와 입맛을 꿰뚫고 있어, "우리 며느리가 이거 좋아해서요"라는 말 한마디에 알아서 좋은 것을 골라주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단순한 구매 경험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오가는 관계의 공간으로서 장터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보여줍니다.
장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은 먹거리입니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밥집, 손으로 빚은 만두를 쪄내는 솥,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내는 전 냄새는 장터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장터를 지켜온 노포 국밥집이나 손두부 집,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 파전 한 접시는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재현할 수 없는 장터만의 맛을 선사합니다. 나주 5일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장날 아침 일찍 도착해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먼저 둘러보고, 점심 무렵에는 장터 한쪽 국밥집에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한 뒤, 오후에는 서서히 정리되는 장터의 풍경을 여유롭게 담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장터 날짜와 위치, 주요 판매 품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나주시 공식 홈페이지나 목사고을시장 관리 사무소에 미리 확인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나주 5일장은 이 도시가 천 년 넘게 이어온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중심지라는 정체성을, 닷새마다 가장 생생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증명해 보이는 공간입니다.